유재아 | TIBIU

금정(金井)
유재아 · 初恋 · 架空历史漫画连载‘이무기야, 이무기야. 이리 나와 보렴.’ 침구 위에서 힘없이 흔들리는 정의 귓가에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정.” 나지막한 목소리가 정의 귓가에 맴돌았다. “여전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까.” 비암은 그대로 정의 입에 도장을 찍듯 입술을 눌렀다. 쪽, 소리와 함께 떨어진 입술이 불에 오른 듯 홧홧했다. 불에 오른 건 입술뿐만이 아니었다. 얼굴 전체가 불덩이가 된 듯 뜨거웠다. “아직도?” 온몸에 열이 오르는 것이, 고뿔이라도 걸린 건 아닌가 싶었다. 비암은 그런 정을 보다 집요하게 괴롭혔다. 츠읍, 츱, 젖은 살결이 부딪치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이번 것은 꽤 성심을 다하였는데.”
혼재(混在)
유재아 · 现代背景 · 黑道漫画连载*해당 작품에 등장하는 지역명 및 단체명 등은 실제와 무관한 창작입니다. 조직 ‘태랑’의 킬러 윤하연과 평범한 서도혁의 연인, 윤하연. 다가오는 그를 거절하지 못해 시작된 이중생활. 반절뿐인 평범 속에서 하연은 그와 함께하는 평범한 일상이 세상의 전부가 되길 바랐다. *** 익숙한 광경이었다. 사방에 낭자한 피, 공간 자체에 밴 비릿한 냄새. 아직 숨이 완전히 끊기지 않은 누군가가 뱉어내는 옅은 숨소리와 장갑 낀 손을 타고 흐르는 미지근한 핏물까지, 전부 다. 그런데. 눈에 익은 풍경 속에, 처음 보는 표정을 한 익숙한 남자가 녹아들어 있었다. 남자의 짙은 흑색 눈동자와 마주한 하연의 얼굴이 일순 경악으로 물들었다. “……서도혁?” 희게 질린 하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여기에 왜…….” 대체 왜, 어째서. 너무 놀라면 혀가 굳을 수도 있는 걸까. 머릿속이 새하얘진 탓에 끝을 맺지 못한 말이 허공으로 맥없이 흩어졌다. 익숙하지만 한 곳에 있어선 안 되는 것들이 혼재하고 있었다. 절대 함께하지 못하도록 그어놨던 선을 넘어 서로 뒤섞여 버린 채. 아니야, 아닐 거야. 두려움보다 앞선 감정은 부정이었다. 그 간절한 마음도 모르고, 남자의 목소리가 자비 없이 귓가에 박혀 들었다. “나 왔어, 자기야.” [작품 속에서] “아까, 살아야 하는 의미가 사라진 거 같다고 했잖아요.” 하연의 시선이 도혁을 향했다. 얼굴에 남아 있던 웃음기는 어느새 모두 지워져 있었다. “사실, 사는 데에 꼭 의미가 필요한 건 아닌데.” “…….” 말을 고르는 남자에게서 장난스럽지만은 않은, 진중함이 묻어 나왔다. “그래도 그 의미라는 게 꼭 있어야 하는 거면.”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하는 말을 집중해서 듣고 있던 때였다. 찻잔 손잡이를 쥐고 있던 손에 툭, 온기가 닿았다. “옆에 나 같은 사람 한 명 두는 건 어때요.” “…….” 따뜻한 차가 속을 데웠기 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몸속이 따뜻해지자 조금 전까지도 느끼지 못했던 한기가 느껴졌다. 이 겨울이 이리도 추웠는지 이 전엔 모르고 있었다. 그제야 주변 사람들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장갑, 귀마개, 목도리, 털 부츠. 춥지 않냐고 물었던 눈앞의 남자도.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춥구나. 겨울이, 생각보다 추웠구나. 얇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제 옷차림이 이 추운 계절에 비해 지나치게 얇게 느껴졌다. 남자의 손은 따뜻했다. 남자가 주는 온기를, 조금 더 느끼고 싶었다.![금기를 깬 성녀의 끝은 [e북] 封面](https://s3-aws.tibiu.xyz/artwork/platform/bomtoon-kr/192555/61/61a34166eb38a865d7ded3f75a79494429b471442fd408cd80f0ee98d128c564.jpg)
금기를 깬 성녀의 끝은 [e북]
유재아 · 浪漫奇幻 · 架空历史漫画连载‘온 제국이 병마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해 주세요. 제게 주어진 힘이 모든 제국민에게 닿을 수 있도록. 늘 살펴 주시기를.’ 매일 아침 옐리아가 입버릇처럼 올리던 기도를 비웃듯, 변절한 대신관은 그녀를 감금했다. 여신을 등진 이들의 손에서 뜻대로 이용당하며 성녀로서의 삶을 끝내고 싶진 않았다. 제국의 앞날을 도모하는 데에 힘을 더할 수만 있다면 옐리아는 무엇이든 할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남자가 필요했다. 성기사도, 사제도 아닌, 적당한 신앙심을 가진 남자가. *** 떠올리는 것조차 죄스러운 상상이었다. 그녀가 이 안에 제 아이를 배고 부푼 젖가슴과 동그랗게 나온 배를 끌어안고 저를 올려다보는 상상. 루시안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성녀를 상대로 한 질 나쁜 상상을 회개했다. 그 상상이 실현될 일은 생기지 않겠지만, 이 안에 제 씨를 뿌릴 때마다 어쩔 수 없이 그런 가정을 하게 되었다. 본래의 행위가 가진 의미를 생각하면 이 안에 쏟아붓는 것은 허무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제 여신이 그걸 원하는 이상, 영혼을 바치는 수밖엔 없었다. 허무 따위, 얼마든지 열락으로 채우면 될 일이었다.